▲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윈회(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이재헌 기자 jh59@)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윈회(공대위)가 공공기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기획재정부 예산운용지침이 무효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대위는 정부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예산운용지침을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 단체교섭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기재부 예산운용지침에 대한 행정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공대위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5개 산별 노조ㆍ연맹이 참여하는 연대기구다. 공대위에는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공공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ILO 권고에도 일방 결정된 '예산운용지침' 공대위는 그동안 기재부 예산운용지침에 대한 노정 교섭을 요구해 왔다. 예산운용지침에 따라 공공기관별 인건비 총액이 결정돼, 사실상 공공부문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결정돼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예산운용지침을 노정 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에 공대위는 지난 2022년 6월과 7월 국제노동위원회(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정부를 ILO 97호 협약 위반으로 제소하고 노정 교섭을 요구했다.
 
이에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지난해 6월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자 단체와 협의 없이 지침을 제정해 공공기관 총인건비 및 임금인상률 상한선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성과급 배분 방식을 결정하며, 임금체계 구조와 원칙을 변경하고, 사내대출 배분 조건을 강화한다는 진정인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노동자의 참여 없이 공공기관 고용조건을 경영평가 지표를 통해 수립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하며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완전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협의 메커니즘을 수립하고 관련 조치를 위원회에 계속 알려줄 것을 요청한다"고 권고했다.
 
ILO 권고에도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기업, 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공대위와 논의 없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결정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총인건비 제도 등으로 공공부문 노동자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예산지침을 일방 결정했다"며 "공공부문 노사의 관계가 얼마나 민주적이지 못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정정희 공공연맹 위원장도 "기재부는 각종 지침을 남발함 공공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무참히 짓밟아오고 있다"며 "정부는 ILO 권고를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공공노동자에게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평가편람 행정소송은 '각하' 판결…이번에는 다를까?
 
다만 기재부 경영평가편람 수정에 대한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협의회(한공노협)의 행정소송이 각하 판결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소송도 본안 판결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행정소송은 소송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본안 판결이 아닌 각하 판결을 한다. 본안 판결은 원고 주장이 이유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결이고, 각하 판결은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법원이 하는 판결이다.

행정소송이 요건을 갖춰 적법하기 위해서는 대상 적격을 갖춰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송 대상이 행정청이 행한 구체적 사실행위로서의 법 집행 행위인 '처분등'에 해당해야 한다.
 
2022년 한공노협이 제기한 기재부 경영평가편람 수정 행위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대상 적격이 없다며 각하 판결했다. 판결 이후 한공노협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해 4월 1심은 "기재부 경영평가편람은 공공기관 성과급 지급 기준이 돼 사실상 공공기관의 운영ㆍ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다"면서도 "사실상 구속력이 있다 해서 편람 수정 행위가 공공기관 경영 자율권과 단체교섭권 등을 침해ㆍ제한하는 공권력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재부의 경영평가편람 수정 행위가 처분이 아닌 행정지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지난해 12월 "편람 수정 행위는 공공기관 운영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행정기관 내부의 관리ㆍ감독 작용일 뿐 공공기관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권리ㆍ의무나 법률상 지위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행위라 보기 어렵다"며 "편람 자체로 공공기관과 그 노동조합 간의 단체협약 체결을 강제하거나 내용을 직접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고 향후 어떤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할 것인지는 공공기관과 노조 간 구체적인 교섭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판시했다.

공대위는 예산운용지침이 경영평가편람 수정 행위보다 공공기관과 노조에게 구체적ㆍ실질적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지난 소송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조민지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경영평가편람 수정 행정소송에서 각하 판결이 선고된 것은 편람이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구체적인 규범력이 없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와 달리 이번 예산운용지침은 정부가 지침에 총인건비 제도를 넣어 공공 노사가 임금에 대한 교섭의 여지를 없앤 상황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구체적ㆍ실질적으로 예산상 불이익이 규정돼 있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침은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공공기관운영법 입법 위임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라며 "소송에서 형식이 지침이라고 해서 규범력이 없지 않음을 구체적으로 다투고, 제3자인 노조가 이 소송을 제기할 구체적인 법률상 이익이 있다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주장하겠다"라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